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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5.♡.66.46) 작성일18-05-17 01:29 조회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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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꿈꾸는 듯한 얼굴의 표정, 겹쳐놓은 두 손의 육감적 아름다움, 풍신한 의상의 질감(質感), 환상적 배경 등 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특히 입가에 감도는 신비스러운 웃음은 흔히 ‘영원한 미소’라고 한다. 출근할 때는 주인보다 한 발 늦게 출발해도 늘 한 발 앞서게 마련이니 버스를 놓칠 염려가 그만큼 적고, 좀 얌체 짓 같지만 신문 구독료 같은 것은 내지 않아도 된다. 대문간에 떨어지는 신문 소리를 먼저 듣는 것은 문간방에 사는 사람이다. 게다가 들창 밑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를,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듣는 것도 전혀 재미없는 일만은 아니다. 고해 신부가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떤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의 굳게 다문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할 때도 있으니까. 어떤 때는 금세 끊기고 마는 그 짤막한 이야기가 오래 전에 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가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만 어떤 영화의 대사를 다시 생각나게 할 때도 있다. "나 죽으면 님자, 그래도 울어 주갔디?" "못난 양반, 흘릴 눈물이나 남겨 두었수?" 술 취한 남편을 부축해 가면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땀과 눈물과 웃음과 용서가 배어 있다. "이놈, 두고 볼 테다. 내 눈을 빼서 네 놈 집 대들보에 걸어 두고라도, 네 놈 망하는 꼴을 지켜 볼테다. 이노옴!" 가슴이 섬뜩하다. 누가 저토록 그를 분노케 했을까? 그의 저주에는 선혈이 안자하다. 사람이란 정말 선한 동물일까? 그러나 간혹 이런 슬픈 대사가 자막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갈 때도 있다. "그 때 나가지 않은 건 싫어서가 아니었어요. 입고 나갈 옷이 없었어요. 이런 대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이 아파 온다. 지금 저 고백을 듣고 있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일까? 아니면 그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함으로 해서 그 후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이처럼 만나게 된 그 남자일까? 대사와 함께 눈물이 글썽한 여인의 창백한 얼굴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되어 온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그것이 행복이라고 노승이 ‘꾸삐씨’에게 말했다. 그게 과연 행복일지 어떨지 모르지만 어딘가 지평선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면 참 아름다울 것 같기는 하다. 지평선 대신 나는 의자에 앉아서 건너편 주유소에 드나드는 자동차들을 바라보고 있다. 놋숟가락은 시 증조할머니의 수저였다고 한다. 아흔까지 장수 하시다가 50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20대부터 이 수저로 진지를 드셨더라도 100년이 넘도록 공씨네 부엌을 지켜온 셈이다. 만년에 치매증세가 있어 대변까지 떠 잡수시던 숟가락이라고 해서 드나드는 이들이 <똥숟가락>이라고 했다 한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봐서 유명한 관상가가 관상은 즉 심상(心相)이라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얼굴의 아름답고 미운 생김새로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쓰기에 달려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치이리라! 또한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고, 고대 신화에도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불행했던 이야기들이 많다. 살아왔다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여린 잇몸을 뚫고 솟은 새하얀 앞니와 머루같이 까만 문이 열려있는 저쪽 칸에 그날 옥문관에서 돌아온 후 내가 시작해 그리다만 <비천> 그림이, 내가 세워놓은 높이 그대로의 캔버스에 내가 그리던 그대로 놓여있는 게 보였다. cbbd1250de9bf851cbac0b8e4ae1f65c.jpg
가을걷이를 끝내고 새 이엉을 올리던 따뜻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이 좋아 인가에서 때를 묻히며 살던 멧새들은 어디쯤에서 날개를 접었을까. 우리 이엉 얹는 날의 그 아늑하던 광경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라나. ㅅㅇㅇㅍ 초박형콘돔 남자자위용품 이런 저런 상념에 젖으며 서정주 시인의 육필이 음각 된 <선운사 동구> 시비에 이르르니 어디선가 바람이 몰고 온 더덕 향기에 몇 개 남았던 동백꽃에서 빠져 나온 향이 어우러져 떠나는 길손에게 향기의 선물을 보내주고 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나의 취미는 여행이다. 우리 생활 형편으로는 과분한 취미여서 아내에게 늘 마음고생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행이 하고 싶어지면 짐짓 '삶이란 엄청 환멸스럽다'는 듯한 침울한 표정을 짓고 묵비권을 행사한다. 경지에 이른 내 Pantomime에 아내는 참지 못하고 "도졌군, 또 병 도졌어…." 하며 음흉한 계략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가난한 여비를 마련해 주곤 했다. 물론 아내를 동반자로 하는 여행이 나의 희망이지만, 아내는 둥지를 못 떠나는 어미새처럼 죽지로 삶을 끌어안고 꼼짝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편의 무능을 보완하려는 반려자의 본능일 터인데 나는 아내의 천성이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늘 혼자 여행을 떠났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아내를 강압적으로 내 옆자리에 태우고 여행을 떠났다. 하기는 아내가 내 강압에 굴복한 것이 아니고 결혼 30주년 기념이라는 여행의미에 여자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만 것인지 모른다. 불영사 입구의 아름다운 계곡에는 유감스럽게도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 아름다운 냇물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어야 한다. 바랑을 진 여승의 조그만 몸이 늦가을 엷은 햇살 아래 징검다리를 조심스럽게 밟고 건너가는 탈속적脫俗的인 산수화 한 폭을 콘크리트다리가 깔고 앉아버렸다.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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